토막글경연대회

9. 하늘과 파랑과 그 녀석 - 엔농

김샤메 2021. 8. 14. 00:43

'그 녀석 진짜...!'

 

 

전철 개찰구를 통과하며 나는 입으로 중얼거렸다.

 

'진짜 별일 아니기만 해봐.'

 

전철 역사를 빠져나가자 망하도록 푸른 하늘에서 장대비보다  거센 햇빛이 변장용으로 쓴 검은 챙 모자를 초 단위로 달구는 것이 느껴졌다.

 

이 찜통 같이 더운 날씨에, 그것도 휴일인 오늘, 나를 사무소로 불러낸 데에 합당한 이유가 없다면 이때야말로 혼쭐을 내주겠다고 다시금 다짐했다.

 

나는 발걸음을 서둘렀다.

이 시기는 역에서 미묘하게 먼 사무소는 도착하기 전까지 서두르지 않으면 땀 때문에 기껏 힘써놓은 화장이 번져버리기 일쑤였다.

사무소 건물까지 걸어갈 때 보이는 저 먼 흰빛없는 파랑을 보면 언제나 여러가지 생각이 든다.

 

대체 무슨 일이길래 이 시간에 날 불러낸 걸까?

날 대체 뭐라고 생각하고 있는 걸까?

 

...에어컨을 이 망할 녀석이 켜놓았을까?

멋없이 그저 283사무소 라고 적힌 문의 손잡이를 쥐자 방 안의 서늘한 한기가 손을 타고 희미하게 전해졌다.

나는 약간의 안도를 느끼며 문을 열어젖혔다.

 

벌컥

 

"! 프로듀서!"

"! 후유코 왔구나!"

 

저 능글맞은 미소 좀 보게, 저게 의도하지 않은 것이라는 게 더 나를 화나게 한다.

'아니 이게 아니지...'

 

 

"그래서, 무슨 일인데? 대관절 무슨 큰일이 닥치셨길래 나를 휴일에 출근시켰는지 나는 꼭 알아야겠는데?"

"그게 말이지..."

그때 주방쪽에서 누군가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하즈키씨? 그렇지만 오늘은 휴일이었던게...'

 

"! 후유코쨩아님까? 좋은아침임다!"

 

"..."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아사,...?"

"아사히, 미안한데 밖에 배달온 거 있는지 확인만 하고 와줄래?"

"에에? 밖은 너무 더워서 싫슴다! 게다가 오늘 공휴일이잖슴까!"

"퀵으로 시킨 게 오늘 온다고 해서 그래, 미안해. 대신 갔다 오면 아이스크림 하나 더 먹어도 되니까."

"진짬까!? 다녀오겠슴다!"

 

방금 내가 들어왔던 사무실 문을 열고 우당탕 계단을 내려가는 아사히의 발소리를 들으며 나는 아연실색한 표정으로 프로듀서를 바라보며 말했다.

 

"저 녀석이... 여기 왜 있는 거야?"

"분명... 2년 전에 실종됐었잖아."

 

 

 

"실은... 얼마 전에 제 발로 사무소로 찾아왔어."

"? 그럼 가족한테 연락은?"

"당연히 해뒀지. 문제는 저 녀석이..."

 

"프로듀서! 정말 뭔가 와있었음다! 집배원분들은 휴일에도 일하시는 검까? 휴일에 그다지 우편 오토바이 본 기억은 없는데 말임다... 신경쓰임다!"

"그건 그렇고 아사히, 다음 스케줄 말인데..."

'스케줄? 무슨 스케줄?'

 

"오 이번엔 어디로 가는검까?"

 

'이 녀석... 설마...'

 

"그건 그렇고 메이쨩은 어디갔슴까? 스트레이라이트는 세명이서 스트레이라이트임다!"

"메이는 잠깐 일이 있어서 조금 늦는대, 좀만 기다리렴. 아 아이스크림 먹어도 된단다."

"야호!"

 

다시금 우당탕 주방으로 뛰어가는 아사히를 뒤로 한 채 프로듀서가 나를 쳐다보았다

 

'어떻게 하라고... 나보고 어떻게 하라고!'

 

'휴일에 불러내길래 풀메이크업으로 나왔건만 정말로 이렇게 큰일일 줄 내가 어떻게 알았겠냐고!'

'게다가 여기에 메이까지 온다고?'

 

그때 다시금 사무실 문이 열렸다.

"야호 프로듀서 간만~ 아사히가 돌아왔다는거 레알이야?? 나 진짜 잡혀있던 일정도 취소하고 왔는......"

"메이..."

"후유코..."

 

'정말 호랑이도 제말하면 온다더니'

 

"프로듀서? 이게 무슨 일이야? 후유코도 불렀어?"

"어라? 메이쨩의 목소리가 들림다! 메이쨩 왔음까?"

"아사히쨩!? 진짜로 돌아왔잖아!"

 

"좋은 아침임다! 그런데 돌아왔다는 게 무슨 소리임까? 암튼 좋은 아침임다!"

 

'전혀 좋지않아...'

나는 머리를 싸매쥐었다.

 


 

또다시 아사히를 심부름 보낸 프로듀서는 나와 메이를 사무실 소파에 앉히고선 자신도 조그만 의자를 가져와 앉았다

 

"짐작했다시피 지금 아사히는 무사히 돌아왔지만 기억은 여전히 실종 전이었던 2년 전인 상태야"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알아? 병원은? 어디 다친 건 아니지?"

 

프로듀서는 고개를 조금 도리지으며 이야기했다

 

"아무것도 몰라. 어딜 갔었는지, 왜 기억을 잃었는지, 어떻게 돌아오게 된건지 아무것도... 병원에서도 물리적 손상은 없다고 했어. 아마 심리적인 요소에서 기인한 것 같다고 추측만 할 뿐..."

 

메이는 내가 겪었던 충격을 고스란히 더 짧은 시간에 받아들이고 있는 듯했다.

 

"잠깐... 그렇다면 지금 아사히쨩은 스트레이라이트가 아직 건재하다고 믿고있다는거?!"

"그렇게 되네..."

"그래서 우리들을 불렀다는 거네."

"... 사실 이때까진 여러 핑계를 대며 사무소에 못 오게 했지만 점점 의심을 부풀려가는 것 같아서 말이야."

"너희들에게도 알려야 할 것 같고 해서 일단 불러서 맞닥뜨리게 했는데 지금 반응을 보면 딱히 좋은 방법은 아니었나봐."

 

'...'

이 망할 남자를 어떻게 해야 좋을까...

"그건 그렇고 메이한테는 아사히가 돌아온걸 알렸으면서 왜 나는 안알려준거야? 아까 반응보니까 그렇던데."

"후유코 네가 오늘 안된다고 했으면 아사히 얘기를 꺼낼려고했는데 바로 된다고 해서 타이밍을 놓쳤어. 미리 알렸어야 했나?

 

"당연한거아냐?! 이런 일이 있었으면 그냥 바로 우리에게 알렸어야지!"

나도 모르게 큰 소리가 나와버렸다.

 

프로듀서도 역시 조금 미안한 눈치였다.

그러나 나는 그 이유를 알고있었다.

 

"그렇지만 너희가... 아니다."

'역시 그랬나.'

 

이제 이 남자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싶어하는지,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대충 알 것 같았다.

내가 아직도 충격에 빠져나오지 못하고있는 듯한 메이에게서 눈을 떼 프로듀서를 살짝 바라보자 곧바로 프로듀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난 잠시 자리를 비울게. 너희끼리 한번 얘기를 나눠봐줬으면 좋겠어. 일단 아사히는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들어오는 일이 없도록 할테니까."

 

'정말 이런데는 쓸데없이 눈치가 빠르다니까.'

 

나는 천천히 메이를 향해 입을 열었다.

 


 

달칵

 

사무소 문을 열고 나오자 무더운 열기가 나를 덮쳤다.

땀이 삐질삐질 피부를 비집고 나오려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거기서 그대로 사무실 문을 기댄채로 주저앉았다.

 

옆을 보자 아사히가 문 옆 계단에서 날 기다리고 있었다.

 

아사히는 아까와는 정반대인, 무언가 결의에 찬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있었다.

 

"정말 고맙슴다. 프로듀서님. 저 때문에..."

"아냐."

뜨거운 공기를 살짝 들이마셨다.

"고마운 건 나지. 고마워, 돌아와줘서. 그리고... 이런 걸 생각해줘서."

 

그러자 아사히는 살짝 쓴웃음을 지어보였다.

 

나는 더이상 가벼운 끄덕거림 밖에 할 수 있는것이 없었다.

 

그녀의 손에선 뜯기지 않은 아이스크림이 천천히 녹아가고있었다.

 


 

입이 바짝바짝 말라온다

분명 이 뜨거운 날씨의 열기 때문이다

분명 이 차가운 바람의 한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내가 이런 말을 메이에게 하고 있을리가 없다

내가 이런 말을 입에 담을리가 없다

메이가 이런 말을 나에게 할리가 없다

이런 말을...

 

달칵

 

다시 문이 열리는 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내 시선이 향한 곳엔 아사히가 서있었다.

 

"아사히?"

"듣고있었던...거야?"

메이 또한 놀란 눈치였다

 

"안 덥슴까?"

 

"?"

 

"에어컨 바람 너무 많이 쐬면 안좋슴다"

 

영문 모르는 말을 무표정으로 태연히 말하는 아사히의 손에는 이미 다 녹아버린듯 흐물거리는 아이스크림이 봉지째로 들려있었다

 

 

아사히는 천천히 방으로 들어와 우리 사이에 놓여져 있던 쓰레기통에 아이스크림을 버렸다

 

"가끔씩은 에어컨 없는 밖도 즐길 필요도 있슴다"

 

"무슨 소리야, . 그것보다 아이스크림은..."

 

"메이쨩, 후유코쨩"

여느 때완 다른 아사히의 낮은 목소리였다.

 

"여태 저 혼자 더운 곳에 있었음다. 미안하게 생각함다."

 

"이미 몸은 차가워질대로 차가워진거 같은데 둘도 잠깐 더운 바람 쐬고오는게 어떻겠슴까?"

 

우리는 멍하니 아사히를 바라보았다.

 

아사히는 또다시 발걸음을 옮겨 냉동고에 들어있던 아이스크림 두 개를 건네며 우리의 등을 밀었다

"어서 다녀오는 검다."

 

"에에? 먼소리야 이거?"

아직도 어리둥절해하는 것 같은 메이를 이끌고 나는 순순히 밖으로 나왔다.

 

밖은 여전히 매우 더웠다.

곧바로 땀이 나서 화장이 다 녹아버려도 이상하지 않은 날씨였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우리는 사무실 건물 밖으로 나왔다.

나는 들고있던 메이의 아이스크림을 제 주인에게 건네며 말했다.

 

"아무래도 된통 당한 거 같네."

 

"? 후유코쨩 이제 더 화 안내? 아까까지만 해도 해체된건 네 탓이니 하면서..."

 

"밖이 이렇게 더운데 더 화내서 뭐해. 그런 일 안해도 땀날텐데."

"이미 지나간 일이야, 너도, 나도."

 

나는 잠깐 숨을 고른 후 말했다.

"아무래도 정말 차가운 곳에 너무 오래 있었나봐, 우리 둘 모두."

 

 

"그건 그렇고 아사히쨩은 어떻게 된 거? 아예 사람이 달라졌던데? 완전 멋있어!"

"몰라, 아마 그 녀석도 그 녀석 나름대로의 사정이 있었나보지, 2년간."

아이스크림 봉지를 뜯어 입에 살짝 문채로 다시 하늘을 바라보았다

 

사무소 밖은 여전히 망하도록 파란 하늘이 우릴 바라보고 있었다.

 


 

 

 

파란 하늘에서 장대비보다 거센 햇빛이 3년만의 검은 무대의상을 초 단위로 달구는 것이 느껴졌다.

 

내 앞에선 여느 때와 같이 그 녀석이 무대를 완전히 장악하고 있었다.

그리고 내 옆에는 메이가 그 자리를 든든히 지켜주고 있었다.

 

 

노래가 끝나자 관객석에선 우레와 같은 함성이 터져나왔다.

 

"마지막 곡, 들어줬음함다. 우리 스트레이라이트의 신곡"

 

"""Another Rampage"""

 

https://www.youtube.com/watch?v=NnI-eNV4gYQ

 

 

 

 

 

@enunonn입니다
 
예전부터 생각만 하던 걸 이번 기회를 빌어 본격적으로 쓰게되었네요
 
여러모로 부족하다고 생각해서 낼까 말까 생각을 많이 하고 또 글자 수를 어떻게 할까도 고민을 많이했지만 지금이 아니면 다시는 안쓸거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 제출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아마 글이 여러모로 내용적으로 불충분한 곳이 많습니다. 어느 정도는 의도한 부분이기도 하고 어느 정도는 제 능력이 부족한 부분이지만 읽고나서 여러 생각이 드셨다면 그걸로 좋습니다. 글은 작가만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니까요.
내용과 관련해 사족을 조금 달자면 '행복'과 연관없어보이는 것들로 행복을 연상시켜보고 싶었습니다. 그야 그렇겠죠. 이 더운 날씨에 밖에 나가서 바람좀 쐬고 오라니 행복은 커녕 악마가 따로 없습니다. 그러나 '땀이 날 정도로 더운 날씨'가 행복으로 연결되는 순간은 모두 한번씩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땀이 나지 않는 에어컨 바람이 있는 실내와 그것을 대비시켜 보고싶었습니다. 실제로 아이돌들이 관객들을 마주하며 행복해할 야외무대에 설때는 '땀이 날 정도로 더운 날씨'일 테니까요.
 
할 말은 많지만 이만 줄이겠습니다. 아 일부러 강조까지 하고 유튜브 링크까지 달아두었으니까 스트레이 신곡 모두 들어주시고 기대해주시고 사랑해주세요. 감사합니다. 행복하세요

엔농(@enunon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