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코토하가 고백을 했다. - 김샤메
코토하가 고백을 했다. 갑작스럽다. 보통 여자아이 쪽에서 해 오는 고백이라고 하면 뭐랄까 조금 이런저런 일로 로맨틱한 분위기가 되어있을 때, 서로 신호가 잔뜩 오갈 때, 하루의 데이트를 마치고 노을이 져 있을 때. 이른바 클라이맥스라는 분위기가 있지 않았나? 오늘이 그런 날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데. 뭐라고 할까, 코토하는 동료의 생일에 ‘태어나줘서 고맙다’라고 말할 만큼 진심이 지나친 감이 있지 않던가, 당연히 뭐라고 하는 건 아니지만.
그 연장선으로 고백에 있어서도 진심이 지나치면 타이밍 같은 게 이렇게 되어버리는 것일 지도 모른다. 어렵구나. 코토하. 그렇기 때문에 지금. 돌아가는 자동차 안, 뒷자리에서. 운전하고 있는 내 뒤통수에 대고 “프로듀서. 저희, 앞으로의 일. 말인데요”라고 하기에, 앞으로의 ‘일’ 이야기라고 생각했던 것과 달리 곧이어 “저랑, 교제를 약속 해 주세요.”라고 말해버린 것이 아닐까 한다. 정말로 제대로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고 있었구나.
타이밍이나 장소는 어떻게 되었든 말하는 어조나 이어지는 침묵에서 농담의 기색은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래도 코토하라도 할 수 있다던 나쁜 짓의 일종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그래서 그 말을 듣고 나는 가장 먼저 운전하기를 포기하기로 했다. 근처에 차를 가져다 세우고.
“그러니까, 사귀어 주세요. 라는 거네?” “네” 틈을 주지 않고 곧바로 따라오는 대답. 긴장해서 목소리가 튄다거나 하지도 않았다. 코토하가 즉답한 것과 달리 나는 빨리 무언가를 말할 준비 따위는 되어있지 않았기에 대화에 공백이 찾아왔다. 뜬금없는 상황이니만큼 지금은 무언가 말하기보다는 생각을 해 봐야 하지 않을까.
그리 깊게 생각하지 않더라도 나의 방침 상, 그리고 상식선에서 이 이야기가 받아들이고 말고의 여지가 있는 사항은 아니다. 당연히 거절한다. 코토하가 싫다는 말은 아니다. 관계적으로만 생각했을 때, 아이돌이 교제를 하는 것 자체도 위험한데 더 무섭게 프로듀서와 아이돌이지 않은가. 댓글과 구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정말로 좋아할 것 같은 주제다. 그 점은 코토하도 알고 있지 않을까?
백 보 양보해서 둘의 관계적으로 있어서는 괜찮다고 하더라도 내가 코토하만 담당하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만나고 관리하고. 프로듀스해야 할 아이들이 잔뜩 있다. 따라서 특별한 사이가 되면서 무의식에라도 한 쪽에 기울고 싶지 않다는 점도 있다. 이 부분도 코토하가 모를 리 없다고 생각한다.
“제가 아이돌이어서, 팬이나, 미디어나... 제 일 때문이라면. 저, 데이트라던가 따로 시간을 보낸다던가. 그런 연애 같은 걸 해 달라고 하는 건 아니에요” 열심히 머리를 굴리던 와중에, 코토하 쪽에서 먼저 다음 말을 꺼냈다. “연애나 애정표현 같은 건. 처음 생각하고 떠올렸을 때는… 기뻤지만, 그렇게 되어주지 않을 거라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도 금방이었어요. 그러니까, 그런 건 알고 있어요.” 즉, 코토하도 방금 내가 의문이 들었던 것 정도는 전부 생각 해 봤다는 것이 된다.
“적어도 저희끼리만 아는 형태만으로도, 아니요. 아무것도 없어도 좋으니까. 약속만 해 주세요.”
무슨 말을 하는 걸까. 우리 사이에 그런 관계가 어렵다는 것도 위험하다는 것도 알면서 약속을 바란다. 퀴즈 같아졌네…. 코토하가 어디까지 짚고 있는지 감이 잡히지 않기에 가장 기본적인 이야기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코토하가 이것저것 생각했다는 건 알겠어. 그래도, 잘 알고있는 대로 아이돌이 연애를 한 다는 게 여러 가지로 위험하고. 네가 말 해준 대로 바깥으로 티를 안 내거나 특별히 우리끼리 시간을 갖지 않는다고 해도, 그런 의미도 불명한 관계가 우리 사이에 있는 것 자체가 코토하를 위해서 좋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애초에, 아무 것도 바깥으로 표현하지 않음에도, 표현할 수 없으면서도 서로에게 비밀로 약속하는 것이 코토하에게 어떤 의미가 되고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조차 감이 잡히지 않는다. 어제까지와 다를 바가 없지만 다른 관계가 되는 것이다. 마치 서로 왼쪽 귀의 가장 안쪽에 펜으로 점을 찍어놓자는 말을 하는 것 같다. 그런 거야말로 남들은 모르면서 어쩌면 우리도 모르는 일이겠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거라는 걸 알았다는 듯, 코토하는 말을 이어갔다.
“저. 아니, 누구도 영원히 아이돌인 채로 살아가지는 않아요.”
맞는 말이다. 아이돌 출신, 전 아이돌이라는 말은 남아도. 계속해서 아이돌인 채로는 있을 수 없다. 그 때 즈음이 되면 한 명의 사람이 되어 결과적으로 본인의 삶이 있고, 배우자니 인생이니 하는 것들은 자연스럽게 당사자의 선택이라 남이 참견할 일이 되지 않는 것이다. 사실 아이돌인 순간도 같은 인간이라면 그래야겠지만, 아이돌이라는 일을 하면 세간이 당사자를 그렇게 놔두질 않을 뿐이다.
“그러니까, 그렇게 될 때까지의 약속이라고 생각 해 주세요.”
요컨대, 어른이 될 때까지 기다려주세요. 의 아이돌(코토하) 버전이라는 것이다. 코토하는, 나에 대해 호감이 있고 그에 따라 정식으로 연애 같은 것도 하고 싶으나, 곧바로 본인이 아이돌이기 때문에 어렵다는 문제에 도달했다. 여기까지는 몇 번쯤 들어왔고 있을법한 이야기이다. 여기서 코토하는 그래도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인지 혹은 나의 어디가 그렇게나 마음에 들었던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지금과 같은 결론을 낸 것일 테다.
그런 상황에서, 진심을 전해받고. 그 계획이 겉보기로는 문제가 없으며 지금의 코토하와 나에게 있어 비즈니스적으로도 무리가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코토하가 지금 요구한 미래를 약속하는 이야기는 ‘아이돌이니까 안 된다’라는 이유로 거부할 수 있는 이야기를 넘어선 개념이 되었다. 곧장 내 머릿속에서는 그렇다면 내가 이 로맨스에 걸맞은 사람인가? 코토하의 이런 진심에 응할 준비가 되어있는 것인가? 문제가 없으니 받아들인다. 같은, 편하게 취급할 일인가? 나는 미래의 코토하와 함께 살아가면서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사람인지에 대해 생각했고 곧 그것도 아니라고 결론을 내렸다.
우선, 나는 코토하와 나의 관계를 포함해 사무소의 전원에게 있어서 프로듀서와 아이돌이라고 상정했기 때문에, 코토하를 사랑한다거나, 사랑할 수 있다거나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없다. 그리고 아마 계속해서 프로듀서와 아이돌인 이상 그럴 예정도 없을 것이다. 즉. 지금 나에게 코토하를 사랑하느냐고 묻는다면 ‘아니요’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순간의 상태로는 코토하와 약속으로 맺어지는 지연된 관계를 받아들일 수가 없는 것이다. 사랑하지만 현재는 이어질 수 없는 상대와 서로 약속을 주고받고, 숨기지 않아도 되는 날이 왔을 때 서로 약속대로 사랑을 확인할 수 있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봐도 로맨틱의 극치다.
하지만, 내 담당이자 아이돌 코토하는 나에게 있어 그런 대상은 아니다. 그렇다고 시간이 흘러 내 손을 떠나거나, 전 아이돌 코토하가 되어 평범하게 연예계에 자리를 잡았을 때 갑자기 그런 대상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아니다. 게임의 전직 같은 게 아니지 않나.
지금의 나로서는 코토하에 대해 인생의 동반자로서의 인식이 없다. 같이 생활하는 아이돌이고 평범하게 고백 같은 것을 받는 것 역시 말이 안 된다고 생각 해 왔기 때문에, 정확히 말해 그런 발상에 도달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아마도 약속을 하고 난 뒤에는 코토하로부터 같이 살아 갈 사람으로서 좋은 점이 보이기 시작할 지도 모르고, 코토하와의 이런저런 일에서 일종의 낯간지러운 감정을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서는 코토하의 조건이자 내 방침에 어긋나게 되는 건 아닌가? 나는 그렇게 의도적으로 코토하로부터 좋은 점을 찾아내려 하고, 코토하를 좋아하기 위해 한 번 더 생각하는 과정은 이미 ‘아무것도’의 범주에서 벗어난 것이 아닌가? 그렇게 된다면 나는 서로 사랑하는 관계가 될 예정이기 때문에 사랑하고자 하는, 괴상한 과정에 빠져야 하는 것은 아닌가?
프로듀서라는 입장에서 진정으로 코토하를 사랑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사랑하고자 마음 먹은 이상 52명의 아이돌 중 한명은 아니게 되는 것이지 않은가. 그러니 사랑하지 않는 상태에서 사랑하는 미래를 약속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이상하다. 결국 어떻게 생각하더라도 코토하의 말은 받아들일 수가 없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서 코토하가 카메라나 미디어를 지금처럼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오더라도, 내가 코토하랑 살아갈 수는 없다고 생각해.”
“저는 프로듀서를 사랑하니까, 프로듀서와 살고 싶어요.”
“나는 코토하를 사랑해 줄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어. 본인을 사랑해주지 않는 사람과 살아도 불행할 뿐이야.”
“제가 사랑받는 건 별개로 저는 프로듀서랑 있어야 행복해요. 애초에 이미 저는 충분히 사랑받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 때가 돼서 갑자기 코토하에 대한 감정이 바뀔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아. 코토하도 지금의 이 감정이 그 때까지 계속될 수 있는지 모르지 않아?”
“그 때 가서 마음이 내키지 않으시면 없었던 일로 하셔도 괜찮아요. 저는 언제까지고 프로듀서라면 그것만으로 좋아할 수 있어요.”
끊임없이 생각하고 힘들게 밖으로 나와 몇 번을 주고받은 말은 의외로 쉽게 막혔다. 지금 한 말들이 전부 진심이라면 코토하는 정말로 나를 좋아하는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할수록 나는 코토하를, 코토하와의 약속을 감당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인생을 걸고 부딪혀오는 진심에 껄끄러운 말을 하는 것이 불편하다는 이유만으로 마음에도 없는 긍정으로 대답하는 일은 하고 싶지 않다.
“프로듀서가 그렇게 받아주시지 않으셔도, 저. 고백을 받거나 하면 결국 다른 사람이랑 살게 될 거에요.”
“코토하에게 고백을 한다면 그런 사람이야말로 코토하를 사랑하기 때문에 코토하와 살아가더라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해”
“그럼 지금 프로듀서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는 저는, 프로듀서를 사랑하고 있는게 되지 않나요? 반대로, 프로듀서는 본인을 사랑한다는 사람이 있는데 어떻게 부정하시는 거에요?”
“코토하의 그런 마음을 아니까, 받아줄 수 없는 거야. 나라는 사람이 코토하를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었다면 받아들였을 거야.”
“그러니까, 그건......”
코토하는 더 이상 나를 설득하는 것을 멈췄다. 코토하를 납득시켰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럴듯한 이유로 코토하가 인정할 수 있도록 완곡하게 거절할 수 있었다면 좋겠지만 나부터가 코토하의 이야기를 받아들일 수 없었고, 그저 안 된다는 말. 거부의 연속이었다. 서로가 서로의 말에, 자신의 말에 납득하지 못한 채 코토하가 그 다음 하려던 말을 삼키기로 하면서 이 이야기는 둘만이 있는 차 안에서 시작해서 차 안에서 끝났다. 정적이 수십 초 이어졌을까, 나는 다시 차를 운전했고. 다음날에는 정말로 아무 일도 없었던 것 같았다. 며칠이 더 지난 그 뒤로도 평소와 같은 날들이 이어졌지만 아마 서로에게 잊을 수 없는 날이 되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시간이 흘러, 정말 당시의 멤버들은 하나둘씩 아이돌로서의 커리어를 마무리지어갔고, 그만큼 새로운 아이들이 들어왔다. 이른바 세대교체다. 여전히 나는 같은 일을 하고 있지만 코토하 역시 내가 프로듀스했던, 과거형 아이돌이 되었다.
결혼 후에는 활동을 멈췄는데, 복귀하면서 부부 공동 출연이라는 기획으로 화면 너머 마주하게 되었다. 같이 외화의 더빙을 맡으면서 알게 된 성우라고 했나. 어느 쪽도 성실해 보이기 때문에 잘 어울린다고 해야 할까. 믿음직스럽다.
방송 중에는 카메라 너머의 무언가를 보겠다는 듯이 카메라를 응시하기를 여러번. “오랜만에 카메라를 보니 반가운가보다” 같은 태클 비슷한 것을 받으며, 이래저래 좋은 분위기다.
분위기가 살짝 어수선해진 순간은, 코토하가 “아이돌 이후 처음 받은 고백으로 연애부터 결혼까지 골 인 이셨다는 거죠” 라는 질문에, 그 당시 즈음의 이야기를 해 주다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을 때다.
지금 와서 그 날의 일을 떠올리라고 해도, 내가 받아들였다면.. 이나 혹시 잘 해 줄 수 있지 않았을까. 같은 생각은 하지 않는다. 지나간 일이니까.
그럼에도, 몇 년도 더 된 일에 대한 미련과도 같은 생각에서 온 나의 착각일 수 있겠지만. 코토하를 오래 봐 왔던 내 눈에 그 상황은 코토하가 감동을 잘 받는 성격인 탓에 행복한 순간을 떠올리면서 눈물을 흘리던 때의 표정이라기보다는, 무언가의 분한 기억에 서글프게 울고 있는 쪽의 표정처럼 보였다.
분명 짧은 망상이라고 생각했는데 6000자를 죽을때까지 채워 쓴 이상한 글이 되었습니다. 이정도의 잡설과 부연설명이 필요했던 걸까요?
요 부끄러운 대회를 개최한 취지가 내 머리속의 망상을 공유하자 인 만큼, 저도 무언가 뱉어내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에게 있어서 코토하라고 하면 왠지 진심의 아이콘같은 느낌입니다. 연애가 하고싶어 보다도. 이 사람과 (생략) 처럼 된단 말이죠. (제가 그렇다는게 아니라 코토하가 그럴 것 같다는 이야기)
그것과는 별개로 머리가 이상한 프로듀서를 준비했습니다. 이래야만 하나? 왜 이러지? 얘 하는 말이 이상한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면.. 아마 대체로 그쪽이 맞지 않을까요.
그래도 사랑이라던가 행복이라던가 하는 것은 한 번쯤 생각하다 보면 머리가 이렇게 되어버리는 걸지도 모릅니다. 저는 사실 평소에 감정이니 진심이니 진실이니 하는 것들에 대해서 자주 생각하고는 하는데요..어쩌고저쩌고.
그 중에서 과연 "프로듀서를 좋다고 하는" 아이돌의 행복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반대로 프로듀서는 어정쩡하게 진짜 행복이란 무엇인가.. 사랑이란무엇인가.. 얘가 날 사랑해도 내가 얘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이 관계? 맞나? 근데 사랑하지 않는다는건 뭘까요?? 애초에사랑이뭔데??
이도저도 아닌 이상한 결과물이 나오게 되는데.. 생각이라는게 이렇게 무섭다 모두생각을하지말자
라노벨 주인공처럼 저의 가치관같은걸 투영한 움직이는 김샤메..뭐 그런 것은 아닙니다. 누가 봐도 고장나 있잖아요 여기 있는 사람들. 저는 근데 그런 망가진 점을 좋아합니다. (저는 고장나고 싶지 않네요) 그런 것을 공유 해 보고 싶었습니다. 뭔가 생각보다 도중의 대화나 마무리가 부실공사처럼 되어있는데, 그 분량만큼 여기 나오시는 분이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는 데에 글자수를 다 써 버린 것 같네요.
이런 비열한 망상에 대한 더 자세한 이야기는 술자리에서.. (언젠가) 부탁드립니다.
저는 제 글이기도 하고 이런걸 쓰는걸 좋아해서 이렇게 길게 썼지만 여기에 본인의 철학과 어쩌고저쩌고..를 다 적어주실 필요는 없습니다.
김샤메 @__EricaHartman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