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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막글경연대회

1. 별의 행복한 어느 날 - 레이너스

by 김샤메 2021. 7. 25.

아스팔트에서 아지랑이가 피어오를 만큼 뜨거운 여름 한 낮. 에어컨 덕에 시원한 사무소 소파에 금발머리 소녀가 누워있다. 소녀의 머리에는 뾰족하게 선 바보털이 숨을 들이쉬고 내쉴 때 마다 천천히 흔들린다. 주먹밥 모양 베개를 품에 끌어안은 채 누워있는 소녀의 입가에는 끈적한 침이 흘러내린 자국이 남아있다. 눈은 감긴 채지만 눈과 입이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미소 짓고 있다. 소녀는 좋은 꿈을 꾸고 있나보다. 그때 사무실 책상에 놓여있던 스마트폰에서 알람이 울리기 시작했다. 잠을 방해받는 게 싫어서일까. 소녀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진다. 책상 앞에 앉아있던 정장을 입은 남자가 벌서 이런 시간인가. 라며 중얼거리고는 소녀의 잠을 방해하던 알람을 껐다. 그리고는 소파에 누워 자고 있는 소녀에게 다가온다. “미키. 일어나. 스케줄 갈 시간이야.” 다정하지만 힘이 실린 목소리에 시끄러운 알람에도 열리지 않던 소녀의 눈이 떠졌다. 별처럼 반짝이는 밝은 녹색의 눈동자가 아직 잠이 덜 깬 듯 멍하니 천장을 바라본다. “아후... 허니?” 소녀는 이내 몸을 일으켜 기지개를 켜면서 작게 하품을 하고는 정장을 입은 남자를 바라본다. “잘 잤어?” 남자는 미소 지으며 소녀의 입가에 묻은 침을 물티슈로 닦아주고는 헝클어진 머리를 손으로 상냥하게 쓰다듬으며 빗어 내렸다. 에어컨 바람으로 차갑게 식은 몸에 닿은 따듯한 손의 온기에 소녀는 남자의 손을 붙잡고 고양이처럼 얼굴을 비빈다. 자신에게만 보여주는 소녀의 귀여운 모습에 남자는 피식 웃고는 소녀를 일으켜 세웠다. “아후~” 몸이 찌뿌둥한지 다시 한 번 기지개를 켜며 하품을 하는 소녀는 화장도 안하고 그저 자다 일어난 모습일 뿐인데도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기 충분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그래서일까. 소녀는 아직 학생인데도 사람들에게 제법 이름이 알려진 아이돌이다. 아름다운 외모와 뛰어난 가창력, 그리고 파워풀한 댄스 실력까지 갖춘 탓에 이제는 그녀를 동경하고 응원하는 팬들이 돔 구장 하나를 가득 채우고도 남을 만큼 잔뜩 있다. 물론 처음부터 그렇지는 않았다. 예쁜 외모로 주변 사람들에게 주목받을 뿐인 일반인이었던 그녀를 스카우트해서 아이돌로 만든 건 지금 그녀의 눈앞에 있는 정장을 입은 남자. 그녀의 프로듀서다. 이 남자가 그녀의 첫 번째 팬이다. 그리고 그녀의 좋아하는 사람이다. 나이차이도 있고 아이돌과 프로듀서라는 관계의 벽이 있지만 그녀의 순수한 마음에 그런 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는 그런 마음을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표현했다. 그 뒤로 그녀는 그에게 프로듀서가 아닌 허니라는 애칭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그래서 곤란한 일도 몇 번이고 있었지만 사적인 자리에서만큼은 항상 그렇게 부른다. 그는 그녀의 순수한 마음을 받아주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대놓고 거부하지도 않는다. 그녀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아서다. 그는 그녀를 좋아한다. 그녀의 팬이니까 당연한 일이다. 그는 그녀가 행복하길 바란다. 그래서 그는 그녀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는다. 그녀는 아직 어리니까. 하지만 그녀가 어른이 되고서도 계속 그를 좋아해준다면 그때는 그도 그녀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할 것이다. 그것이 그녀의 행복이라면, 그것이 자신의 행복일 테니까. “가자 미키, 이러다 늦겠어.” 소녀는 어느새 말끔해진 얼굴로 활짝 웃으며 그에게 대답한다. “. 허니!”

 

오늘도 미키가 귀엽다.

레이너스 (@rainus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