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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막글경연대회11

10. 시스터 파이트 - 카드값줘치에리 "리카에게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어." 죠가사키 미카는 곧 죽을 것 같은 얼굴로 말했다. 프로젝트 크로네의 사무실에 정적이 흘렀다. '미카, 얼굴색이 안 좋아. 무슨 일이라도 있는거야?' 라고 물어본 프로듀서를 모두가 죽일듯이 노려봤다. 대체 저 말에 어떤 반응을 하라는 것인가. 아무도 안 물어봤어, 라고 현명하게 대꾸할 수도 있겠지만, 앞서 있었던 프로듀서의 질문 때문에 그 안은 기각할 수밖에 없었다. 말투 자체는 꽤나 진지했다. 표정도 진지했다. 내용이 시시하기 짝이 없을 뿐이다. 리카는 올해 생일이 지나 13살.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지 않는게 더 이상하다. 남자친구라면 모를까. 아니, 남자친구도 평범하다. 차라리 여자친구를 데려와라. 와, 정말? 같은 형식적인 반응이라도 할 수 있지 않은가. 여기까지.. 2021. 8. 14.
9. 하늘과 파랑과 그 녀석 - 엔농 '그 녀석 진짜...!' 띡 전철 개찰구를 통과하며 나는 입으로 중얼거렸다. '진짜 별일 아니기만 해봐.' 전철 역사를 빠져나가자 망하도록 푸른 하늘에서 장대비보다 거센 햇빛이 변장용으로 쓴 검은 챙 모자를 초 단위로 달구는 것이 느껴졌다. 이 찜통 같이 더운 날씨에, 그것도 휴일인 오늘, 나를 사무소로 불러낸 데에 합당한 이유가 없다면 이때야말로 혼쭐을 내주겠다고 다시금 다짐했다. 나는 발걸음을 서둘렀다. 이 시기는 역에서 미묘하게 먼 사무소는 도착하기 전까지 서두르지 않으면 땀 때문에 기껏 힘써놓은 화장이 번져버리기 일쑤였다. 사무소 건물까지 걸어갈 때 보이는 저 먼 흰빛없는 파랑을 보면 언제나 여러가지 생각이 든다. 대체 무슨 일이길래 이 시간에 날 불러낸 걸까? 날 대체 뭐라고 생각하고 있는 걸까.. 2021. 8. 14.
8. 쨍한 하늘 아래 - 루아 우렁차면서도 찢어지는 듯한 특이한 함성소리. 행진가가 떠오르는 금관악기 특유의 경쾌하고 웅장한 소리가 그 뒤를 이었다. 15초가량의 짧은 선율이었지만 알람으로 사용되기엔 충분한 멜로디였다. 함성소리가 들렸을 땐 마치 악몽을 꾼 사람처럼 미간을 떨며 이빨을 갈았지만, 이어지는 리듬이 들려오자 파들거리던 미간과 눈썹이 곧게 세워지면서 유리코는 눈을 크게 떴다. 소리의 근원을 제거하기 위해 빠르게 오른쪽 팔을 뻗어 조그마한 서랍 위를 더듬는 유리코. 고양이... 가 아니라 조그마한 고양이 무드등의 머리를 몇 번 때리더니 바로 옆의 스마트폰을 찾아 재빨리 알람을 껐다. 잠시 멍하니 뜸을 들이다 천천히 몸을 세우고 시원하게 하품. 눈을 몇 번 비비적거리곤 오른손의 스마트폰을 시선 앞으로 가져온 뒤 화면의 정 중앙.. 2021. 8. 13.
7. 좋아하면 그냥 좋아하는거지 - 안치환의소금인형 숨을 들이쉬고 내쉬니까 이빨이 시리게 느껴지고 가슴 속은 턱 막힌 느낌이 드는 게 도저히 내가 숨을 쉬는 건지 안 쉬는 건지 알 수가 없다. 문득 한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 품지도 않았고, 품어서도 안 된다고 여겼던 생각이. 그 생각이 한번 머릿속을 스치고 나니까 아마 그 뒤론 며칠 동안 제대로 눈조차 감기지 않았던 것 같다. 나는 마유를 사랑하고 있었을까? "...요즘 무슨 일이라도 있나요? ​안색이 안 좋아 보이는데." "괜찮아. 마유. 고마워." 나와 마유는 연인 관계였다. 마유는 이미 아이돌을 그만두고 다른 길에 들어섰지만, 아직도 이 사실이 대외적으로 알려지진 않았다. 나는 마유를 향한 마음을 훨씬 전부터 가지고 있었어도 아무런 말도 행동도 하지 않았지만, 마유는 정말로 마음을 숨기지 못했던 것.. 2021. 8. 10.
6. 로봇이니까, 머신이니까 - 웨인P "프로듀서 군, 로봇 아닐까?" 테이블 한 켠을 차지한 리오는 그 고운 선의 목울대를 움직이며 캔의 내용물을 들이키더니, 숨을 고르고선 갑자기 한 마디를 던졌다. "벌써 취했니 리오?" 잠자코 듣고 있던 코노미는 별로 놀람의 감정이 섞이진 않은 말로 대꾸했다. 자주 있던 일을 보는 것이라는 듯. 리오는 그 말에 반이나 남은 캔을 흔들어 보이며 볼멘소리를 했다. "코노미 언니, 제가 반 캔으로 헤롱댈 정도는 아니잖아요?" "그럼 갑자기 로봇이라니 무슨 … ?" 탈선할 뻔한 대화를 이은 것은 리오의 반대편에 앉은 후카였다. 갸웃하고 고개를 젓는 모습은 흡사 소동물 같은 기운을 느끼게 했다. 소동물이 캔에 담긴 알콜을 즐기진 않겠지만. "그야 프로듀서 군 매사에 뭐라고할까... 무미건조하지 않아? 종교인 같다.. 2021. 8. 7.
5. 이치노세 시키 「Injection」- Lozental 박제가 되어버린 두 사람을 아시오? 나는 유쾌하오. 이런 때 연애까지가 유쾌하오. 나는 여인과의 생활을 설계하는 두 사람을 보며 한 발만 들여놓고 백지를 쳐다보며 낄낄대오. 그 속에 나는 위트와 패러독스를 바둑 포석처럼 늘어놓소. 나는 아마 어지간히 인생의 제행이 싱거워서 견딜 수가 없게 된 모양이오. 굿바이. 옥상. 어느 건물의 옥상인지 나는 모른다. 내 옆에 있는 사람에 대한 것도 모른다. 알고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아무것도 없다. 다만 내 옆에 있는 소녀에 대한 것은 어째선지 술술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녀를 소개하자면, 날개가 있다면 해맑은 미소와 함께 하늘 저 멀리 날아갈 것만 같은 소녀다. 바벨탑의 꼭대기에서도 주저 없이 날개를 펴고 활강할 소녀다. 날개. 그래, 날개가 있다면 그녀.. 2021. 8. 6.
4.지금을 노래하는 가희 - 키사라기 치하야의 노래와 행복에 관하여 -MiddleGuy 思わずクスッとしたら 무심코 '후훗' 웃으면 空も晴れたみたい 하늘도 개이는 것 같아 私が変わったから? 내가 바뀌었기 때문일까? 치하야의 「Coming Smile」이 발표되었을 때 많은 치하야의 담당 프로듀서들이 놀라면서도 기뻐했을 것 같다. 물론 나도 그렇다. 단순하게 생각해서 치하야가 비교적 가볍고 밝은 노래를 받게 되어서이기도 하지만, 조금 깊이 생각해봤을 때, 이 노래는 지금까지 아이마스의 시간 속에서 치하야가 걸어온 여정의 ‘제 2막’을 여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아서이기도 하다. 여기서부터는 아이마스 애니와 밀리시타, 특히 치하야의 역대 솔로곡에 기반한 나의 생각이다. 치하야는 심리적으로 황폐한 환경에 있었다. 치하야는 마음을 굳게 닫고 있었고 고독했으며 특히 가정 환경이 매우 좋지 않았다. 치하야.. 2021. 8. 3.
3. 행복 - 리버P 유키미 "행복이란…… 뭘까……?" 나의 스캐너로 고정된 시선이 돌려진 건 한 순간이었다. 사실 갑자기 10살밖에 안 된 저 아이의 입에서 저런 원론적이고 상대적인 질문을 듣게 되는 것 자체가 조금 당황스러웠던 것이 제일 커다란 이유겠지만, 문득 존재 자체가 나에겐 행복인 이 귀여운 천사가 뜬금없이 이 질문을 하게된 동기가 제일 궁금해지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나는 입을 열어 되물었다. 리버P "음, 뭘 접하면서 그리 생각했을까? 우리 공주님?" 유키미 "넷플릭스……" 피식하고 웃음이 터져버렸다. 긍정적으로는 흡수가 빠른 요즘 시대같은 순수함, 부정적으로는 유해한 콘텐츠까지 필터링 없이 빨아들이는 재난과도 같은 만감이 교차하며 머리로는 복잡했지만, 그래도 이런 천사에게 아직 이런 복잡한 질문에 대한 답을 너.. 2021. 8. 3.
2. ELLIE와 에리의 행복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 밤색(ChestnuT) 1. 인간은 사회적 동물[social animal, 社會的 動物]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대로, 인간은 타인과 만나 집단을 형성하고 교류하며 그 속에서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음으로써 행복을 얻는다. 미즈타니 에리 또한 인간이지만, ‘사회적 동물’이 되기엔 결점이 많았고 그 결과 도태되었다. “어째서 미즈타니 양은 그렇게 작은 목소리로만 말하는 거야?” “……” 혼자서 영상 편집을 해내고, 작곡이나 디자인도 가능할 정도로 머리와 재능은 날 때부터 비상했지만 부족하던 사회성과 대인기피증이 발목을 잡아 인간관계에서 실패해버린 에리. “…이게, 가장 큰 목소리… 인데?” “전혀 안 들리니까 묻는 거잖아. 그리고 왜 매번 말끝을 흐리는 거야? 우물쭈물하지 말고 확실하게 말해.” “하지만 나는…” “내.. 2021. 8. 1.
1. 별의 행복한 어느 날 - 레이너스 아스팔트에서 아지랑이가 피어오를 만큼 뜨거운 여름 한 낮. 에어컨 덕에 시원한 사무소 소파에 금발머리 소녀가 누워있다. 소녀의 머리에는 뾰족하게 선 바보털이 숨을 들이쉬고 내쉴 때 마다 천천히 흔들린다. 주먹밥 모양 베개를 품에 끌어안은 채 누워있는 소녀의 입가에는 끈적한 침이 흘러내린 자국이 남아있다. 눈은 감긴 채지만 눈과 입이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미소 짓고 있다. 소녀는 좋은 꿈을 꾸고 있나보다. 그때 사무실 책상에 놓여있던 스마트폰에서 알람이 울리기 시작했다. 잠을 방해받는 게 싫어서일까. 소녀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진다. 책상 앞에 앉아있던 정장을 입은 남자가 벌서 이런 시간인가. 라며 중얼거리고는 소녀의 잠을 방해하던 알람을 껐다. 그리고는 소파에 누워 자고 있는 소녀에게 다가온다. “미키... 2021. 7.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