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듀서 군, 로봇 아닐까?"
테이블 한 켠을 차지한 리오는 그 고운 선의 목울대를 움직이며 캔의 내용물을 들이키더니, 숨을 고르고선 갑자기 한 마디를 던졌다.
"벌써 취했니 리오?"
잠자코 듣고 있던 코노미는 별로 놀람의 감정이 섞이진 않은 말로 대꾸했다. 자주 있던 일을 보는 것이라는 듯.
리오는 그 말에 반이나 남은 캔을 흔들어 보이며 볼멘소리를 했다.
"코노미 언니, 제가 반 캔으로 헤롱댈 정도는 아니잖아요?"
"그럼 갑자기 로봇이라니 무슨 … ?"
탈선할 뻔한 대화를 이은 것은 리오의 반대편에 앉은 후카였다. 갸웃하고 고개를 젓는 모습은 흡사 소동물 같은 기운을 느끼게 했다. 소동물이 캔에 담긴 알콜을 즐기진 않겠지만.
"그야 프로듀서 군 매사에 뭐라고할까... 무미건조하지 않아? 종교인 같다는 느낌?"
"그랬나? 종교인 같은 건 내가 모르니까 뭐라곤 못 하겠지만… 체온은 사람이 맞던데?"
"코노미 언니 어떻게-"
"설마 두 사람-"
"머리 쓰다듬을 때 알았어."
경악하는 둘을 타이르듯이 말을 자르고 코노미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여동생 같다고, 실수로 그랬다고 바로 사과하더라. 내가 765프로 아이돌 중에선 최연장자인데, 정말."
어깨와 함께 그 특징적인 대칭 삐침머리도 축 늘어지는 듯 했다.
바람 빠진 튜브에 공기를 불어넣는 양 코노미는 남은 술을 한 번에 입에 털어넣고, 터덜터덜 냉장고로 향해서 캔을 꺼내 자리로 되돌아와 풀썩 앉았다.
"그런 것 말고도… 웃기도 하시고, 식사도 하시잖아요? "
"그렇긴 한데에… …아니지, 내가 뭔 말 하고 있담. 비유적 표현이얏."
캔에 입을 대고 한 모금 마셔서 목을 적신 후, 리오는 다시 말을 이어갔다.
"그 정도야 당연하게 알고 있다구. 활발한 애들이랑 어울려서 뛰고 있으면 숨도 몰아쉬고."
" …근데 되게 체력 대단하지 않아? 뛰는ㄷ"
코노미가 말을 받는 순간, 문이 부숴질 기세로 열렸다.
"빰빠카빰~!!"
"레, 레이카… 아무리 우리 밖에 없어도 그렇게 세게 열면 …"
한 번 보면 잊을 수 없는 묶은 머리의 레이카가 캔이 잔뜩 담긴 비닐봉투들을 들고 나타났고, 그 기세에 놀라 살짝 위축된 카오리 역시 비닐봉투를 양 손에 들고 있었다.
"다~녀왔습니다~!!"
비닐봉투를 통째로 냉장고에 쑤셔넣고, 냉장고에 들어있던 캔 두개를 꺼내 하나는 카오리에게 던졌다.
"카오리언니 패스~!!"
"으, 으와앗?! 위험하잖아 레이카…?!"
포물선으로 날아온 캔을 양 손으로 받은 카오리는 입을 삐죽 내밀더니 따개 부분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들겼다.
그리고 캔을 딴 뒤 의자에 앉아 건배하자는 듯이 들어올렸다.
레이카도 토끼가 뿅뿅 튀어오듯 자리에 앉아 캔을 땄다.
들어올려진 캔 여러 개가 톡 하고 부딪힌 뒤에, 잠시 술을 마시느라 흐른 정적을 깬 것은 카오리였다.
" …지금 무슨 얘기들 하고 계셨어요, 그런데?"
" …응? 아! 프로듀서 군 있잖아, 로봇 아닐까 하고!"
"잠깐 리오! 대뜸 그렇게 얘기하면 못 알아듣잖아!"
리오가 급하게 얘기를 진행하고 코노미가 태클을 거는 만담 같은 상황이 이어졌지만 후카는 그 얘기를 들은 두 사람의 눈에 반짝임이 깃드는 것을 보고 뭔가 잘못됨을 느꼈다.
"와아, 정말인가요? 어쩜, 대단한 분이라곤 생각했지만…"
단아한 몸가짐과 침착한 말투에 어울리지 않게 눈을 반짝이는 카오리는 물론이고,
"와~이! 로봇인가요, 강철의 하트인가요! 폭렬의 철혈듀서시네요~!!"
표정이 웃음에서 변하지 않는 것만 같은 레이카가 식도 뚜껑이 열리진 않았나 싶을 정도로 오래도록 침묵을 지키다가 입을 떼자마자 주제에 올라탔다.
" … …저어, 여러분 …?"
소란이 지나간 뒤, 설명의 시간을 가지고 다시 찾아온 적막은, 레이카의 견과류를 물어 부수는 소리에 깨졌다.
"…로봇, 인가요 … 정말로 로봇인 줄 알았네요… 아이처럼 들뜨고, 나도 참…"
"뿌뿌."
"그럴 리가 없잖아! 레이카는 실망하지 말고!"
"이야기로 돌아오자면… 그렇네요, 저랑 있을 때는 곧잘 웃고 그러셨거든요."
"아항, 프로듀서 군은 고풍스러운 스타일을… …으흥."
"저요 저요~! 휴일에 저랑 등산했는데 한 번도 안 뒤쳐졌어요! 로봇이네요!"
발랄하게 말하는 레이카의 폐활량, 체력, 기타등등 피지컬을 알고 있던 그 자리의 모두는 경악했다.
"그러고 보면, 프로듀서 씨…"
여태 맞장구만 치던 후카가 이야기를 꺼내자 다른 사람들은 말하라는 의미로 그쪽을 돌아보았다.
"흡연량도 꽤 되시거든요."
"어머, 그래? 담배 냄새 그렇게 안 나던데? 리오, 넌 어떠니?"
"응?! 콜록, 왜 저한테?!"
"그야 제일 가까이 다가가면서. 언니가 모르는 줄 아니?"
"… …"
리오는 얼굴을 붉히고 술만 홀짝이다가 입을 뗐다.
"저도 딱히 담배냄새가 심하다고는 못 느꼈어요. 아, 피나보다, 싶었던 정도."
"아무튼, 점심시간에 잠시 옥상에 올라갈 일이 있었는데 연기 나는 꽁초가 한가득이었어요. 탈취는 확실히 하니까 너무 뭐라고 하지 말라고 하셨지만…"
후카는 쓴웃음을 짓고 술을 한 모금 홀짝였다.
"그리고 사무실에서 입에 물고 계시는 그거, 금연파이프예요."
"…응?"
"마침 물어보니까 그거라도 안 하면 온몸이 부들부들 떨릴 것 같다나 뭐라나…"
쓴웃음에서 엄한 질책의 표정이 되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나이 차가 많이 벌어지는 동생을 타이르듯 부드럽지만 단호해지는 후카의 목소리였다.
"프로듀서, 정말 뭐 하는 사람일까…"
"금단증상이죠, 그거…?"
"사탕으로 입을 막아버리죠~!"
"어머나, 그거 좋은 생각이야! 아버지께서도 금연하신다고 사탕을 입에 달고 사시거든!"
"얘기가 한 번도 본 궤도에 오르질 않는구나…"
혼잣말을 흘린 리오였지만 자신의 말을 듣고, 속으로 애초에 대화의 시작부터가 정상적이지 않았다는 생각을 해냈다.
술에 얼큰하게 취하면 그렇게 된다. 몸은 비틀비틀거리지만 어쩐지 객관적이게 된다.
그래서였을까, 리오는 얼굴을 붉힌 탓에 술이 확 올라왔다고 생각해 바람을 쐬며 풀 요량으로 창가에 갔다.
창문을 열고, 마주보고 있는 소파의 구석에 털썩 주저앉은 리오는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돌렸다.
새우잠을 자고 있던 자세 그대로 굳어 있는 프로듀서의 얼굴은 만지면 화상 입겠다 싶을 정도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더욱 그렇게 되는 것 같았다.
'프로듀서 군, 로봇은 아니었구나.'
잠시 그렇게 생각하던 리오의 얼굴 역시 같은 색으로 물들었다. 취한 탓에 사고는 한 발 느리게 움직이기 때문이다.
담배를 피운다느니 하는 설정은 글쓴이의 오리지널P의 설정입니다만... 기본적으로 아이돌에 대해 믿을만한 동료, 그 이상으로 나아가지 않는 P를 보며 정작 아이돌들이 품는 감상은 어떠한지에 대해 생각해보다가 쓰게 되었습니다.
사실 에버노트에 있던 토막글을 마무리지은 게 전부입니다만 이런 좋은 대회를 맞아 먼지를 털게 되었네요 허허.
제목은 글쓴이의 올드한 취향대로 그레이트 마징가 오프닝의 가사를 따왔습니다. 나는 눈물을 흘리지 않아. 로봇이니까, 머신이니까. 하는 가사는 한 번 들으면 잊을 수 없는 강렬한 느낌을 주어서 이런 식으로나마 오마주를 해보았습니다. P군은 로봇도 머신도 아니지만요.
웨인P
(@Buster_Wayne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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